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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리뷰

[인생리뷰] 5. 나의 승선기 - 승선기 3편

by 나의 30대 2022.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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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기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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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6 - [인생리뷰] - [인생리뷰] 5. 나의 승선기 - 승선기 2편

 

[인생리뷰] 5. 나의 승선기 - 승선기 2편

승선기 2편 이전 글을 안 보셨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2022.03.15 - [인생리뷰] - [인생리뷰] 5. 나의 승선기 - 승선기 1편 [인생리뷰] 5. 나의 승선기 - 승선기 1편 승선기 1편 이전 글을 안 보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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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도 인생썰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코로나에 걸려 한동안 글쓰기를 쉬다가 왔네요 ㅎ

코시국이 종료될길...
코시국이 종료될길...

 

오늘은 첫번째 실습생 시절의

마무리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 배의 생활은 같은 일상의 반복이라

비슷한 나날을 보내다보니 특별히 생각나는

에피소드 위주로 적어보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실습 강제종료

 

내가 첫 실습배에 승선하고

6개월쯤이 흘렀을까?

우리회사에 문제가 생겨

내가 타고있던 실습배가 외국에 팔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추후에 해사고 동기들에게 물었을 때

승선 중 배가 팔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 아마 평범한 일은 아닌 듯 하다.

 

나의 실습선은 칠레의 한 선사로 매각이 되었는데

선사에서 매각 전 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칠레의 선장과 기관장 2명이

미국에서 탑승하여 2개월간 함께 항해를 진행하였다.

당시 칠레의 위치를 처음 알았다.
당시 칠레의 위치를 처음 알았다.

 

처음으로 칠레사람을 만났는데

생각보다 젠틀한 성격이었고

당시 실습생이었던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칠레에서는 보통 배를 4개월 타고

2개월간 유급휴가를 보낸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선사의 선원들은 6~8개월 정도 계약을 하지만

8~10개월씩 배를 탔으며 1년 이상 타는 사람도

종종 보였다.

 

그렇게 배를 타고도 한달만에 재승선하기도 하였기에

칠레의 승선문화가 부러웠다.

 

이유를 물었더니 칠레에선 4개월 이상

부인과 별거할 경우 이혼 사유가 된다나?

장난인지 모를 이야기를 남기며 칠레 선장은 그저 웃었다.

 

그리고 같이 온 칠레 기관장은 

선장보다 더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

고혈압을 앓고 있어

식사시간에도 음식을 직접 조리해 먹었따.

 

당시 목이 말랐던 칠레 기관장은

면세품 창고를 뒤지다 소주를 발견하고

소주를 물인줄 착각하여 전기포트에

가열하여 먹었다가 일주일간 쓰러진 적이 있다.

 

반복되던 승선 일상생활 속 

유쾌한 칠레인들의 동승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게 2개월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났고

배는 매각되었으며

우리는 미국의 LA항구에서 전원 하선하였다.

 

집에 보내주세요....

 

LA항구에서 전원 하선하고 공항으로 가기까지

정말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먼저 선원중 미국 비자가 있던 사람이

3명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미국은 비자가 없을 경우

상륙이 불가한 국가 중 하나였다.

 

나또한 미국비자는 없었으며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백인 대장과

흑인 군인들이 즐비한 버스에

교도소 수감자가 연행되듯 끌려갔다.

대충 이런 느낌의 버스에 군인들과 동행하였다.
대충 이런 느낌의 버스에 군인들과 동행하였다.

 

버스에는 암막으로 밖을 볼 수 없었고

군인들은 한마디 하지 않는 적막이 흘렀다.

 

다행히 공항으로 인계하는 과정까지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우리는 공항의 보안요원들에게 인계되었다.

 

헌데 공항은 더 심했다....

 

공항에서는 무기 소지를 우려하여

모두 신발을 벗고 소지품 검사를 했으며

격리실에서 비행기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나는 인천공항으로가는 비행기가

금방 도착 예정이라 짧게 있었지만

선원 중 중국 선원이 있었는데

하필 설날과 가까운 날에 우리가 배를 내리다보니

중국 선원은 격리실에서 12시간 이상 보내야하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한국 선원들은 모두 공항에서 선원들과 인사하고

인천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였다.

 

국제선은 처음 타봤는데

기내에 모니터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었고

게임도 가능했다.

 

그리고 기내식은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다보니

비빔밥과 같은 한식도 있었다.

 

여차저차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본가에 가기위해 김해공항으로 가는

국내선을 한번 더 타게된다.

 

당시 공항에서 승선 전

안내방송으로 내이름이 호명되며

소지품 검사를 재수행하였는데

알고보니 내 캐리어 가방에

승선 당시 사용했던 필통 속 칼심이 있었다.

 

다행히 안내원분이 

칼심은 위험물품이기에 본인이 버려주겠다고하며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안내원이 나에게

어디서부터 왔냐고 물었다.

 

나는 미국의 LA공항에서

무비자로 온 사실을 말했고

안내원은 나에게

 

"큰일날뻔 하셨네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걸렸다면

집에 못 돌아오셨겠는데요?"

 

라며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오싹한 에피소드이다.

 

이렇게 나는 무사히 집으로 귀가하였고

나의 첫번째 실습기는 끝이난다.

 

하지만 실습기간을 1년 채워야했기에

나는 설날을 본가에서 보내고

다음 실습선에 오르게되는데....

 

다음 실습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적어보겠습니다.


여기까지 저의 인생 썰이였습니다.

 

다음에도 저의 인생 이야기를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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